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르네 데카르트 (문단 편집) === 유년 시절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previews.123rf.com/15270207-The-house-were-Rene-Descartes-was-born-Le-Haye-en-Tourene-Created-by-Frere-published-on-Magasin-Pitt-Stock-Photo.jpg|width=100%]]}}} || || 생가 || [[프랑스]] [[투렌]] 지방(Touraine)의 [[투르]] 인근에 있는 소도시 라에(la Haye)[* 1990년대에 데카르트시(Descartes)로 이름을 바꾸었다.]에서 브르타뉴주의 고등법원 평정관이었던 아버지인 조아킴 데카르트(Joachim Descartes)와 잔 브로샤르(Jeanne Brochard) 부부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인 잔 브로샤르는 데카르트를 낳고 [[https://muse.jhu.edu/article/38860|1년 1개월 후]]에 죽게 되고, 태어날 때부터 몸이 좋지 않았던 데카르트 또한 생명이 위태로웠지만 다행히도 살아남는다.[* 이때 살아남았기 때문에 이름을 '다시 태어난다'는 뜻의 레나투스(Renatus)의 프랑스식 변형으로, '르네트르(Renaître)'의 과거분사형인 [[르네]](René)로 지어졌다.] 물론 어머니와 같은 결핵 징후를 보이고 있었으며, 어린 시절부터 계속 창백하고 마른 아이였다. 어린 시절에는 친구들이 거의 없었고, 자신을 돌봐주던 간호사와 사팔뜨기 소녀 친구 [[http://leroy7.com/gnuboard4.euckr/gnuboard4/bbs/board.php?bo_table=mine&wr_id=664|프랑수아즈]]가 있었다. 후에 시간이 지난 뒤에도, 데카르트는 이 둘에게 놀랄 만한 정도의 충실함과 헌신을 보였다고 하는데, 심지어 유산을 얻었을 때에도 간호사에게 많은 돈을 주었고, 자신의 일생 동안 프랑수아즈와도 우정을 돈독히 하며 지냈다고 한다. 학문적으로는 능력자였으나, 몸이 많이 약한 편으로 그의 어머니에게서 유전된 듯하다.[* 사실 [[임마누엘 칸트|칸트]]도 어릴 때부터 몸이 약한 걸로 동네에서 유명했지만, 본인이 그걸 일찍 깨닫고 평생 규칙적으로 생활하고 건강에 나쁜 걸 기피하는 생활을 유지하여 장수하였다.] 이 때문에 데카르트의 아버지는 아들도 아내처럼 일찍 죽을 것을 걱정하여, 그가 학교를 가고 싶다는 것을 말리고 강제로 쉬게 했다. 그래서 8살(또는 10살)이 되던 해에 [[예수회]] 계열 학교인 라플레슈(La Flèche)에 입학해 8년을 공부하는데, 몸이 약해 학교 수업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고 한다.[* 이때 같은 학교에 입학한 [[마랭 메르센]]과 교류한다.] 그런데 수업을 그렇게 듣지를 못했는데도 [[철학자]]들이 대부분 그렇듯 공부는 무지 잘했다. 그런 그의 재능을 꿰뚫어 본 어느 관대한 교장이 수업을 듣는 대신에 그 시간에 데카르트에게 늦게까지 잠을 자는 것을 허락했다. 데카르트의 [[늦잠]] 자는 버릇은 이때부터 시작된 듯하다. 그러나 이런 늦게까지 침대에 있는 습관에서 그는 사색과 [[생각]]을 많이 했고 이 생각들이 훗날 그의 사상에 많은 도움을 줬다고 한다. 대표적인 업적이 후술할 [[좌표]]의 발견인데 날벌레가 천장에 붙어있는 것을 보고 저 날벌레의 위치를 계산하려다가 만들어 진 것이 바로 좌표의 발견이다. 라플레슈를 졸업하곤, 바로 푸아티에 대학에 입학해 법학과 의학을 배웠고 2년 뒤 20세의 나이에 푸아티에 대학에서 법학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세상이라는 커다란 책" 속으로 여행의 길을 떠났다.[* 데카르트는 "세상"을 "책"으로 비유했는데, 이런 생각은 5세기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해서 주장되었고 이후 레이몽 스봉의 『자연신학』에서 다시 나온다. 레이몽 스봉은 신이 인간에게 두 가지 책을 주었다고 말한다. 한 가지는 성경이고 다른 하나는 "자연세계"다. 그리고 인간은 이 "자연세계"라는 책에서 신의 존재에 대한 증거를 "읽을" 수 있다고 스봉은 주장한다. 그 "읽음"은 회의주의적 관점에서 비롯된 관용적인 자연탐구에서 시작된다. 물론 이 책은 가톨릭에 의해서 금서로 지정되지만, 당시 회의주의 사상을 대세로 만들었던 [[미셸 드 몽테뉴|몽테뉴]]의 『에세』에 수록되어 널리 퍼졌고, 젊은 데카르트는 이 『에세』를 읽으면서 회의주의적 영향을 받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